by itzsong 5 January 2018

마쉬멜로우 게임: 소비하지 않는 사회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관용어구 중에는 이러한 말이 하나 있다.

“하루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직장이므로, 자신의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재미있게 임해야 한다.”

이런 식의 점잖은 충고이다. 사실 우리의 현실적인 삶이 또 그러하므로, 사람들은 이와 같은 충고를 대부분 별다른 비판점 없이 수용하곤 한다. 그러나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어딘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상 근무 시간은 정확히 8시간이다. 그리고 하루는 24시간이다. 24-8=16이다. 즉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합의 보기를 하루의 30% ‘만’ 일터에서 지내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리터럴리하게 보자면 사람은 하루 중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많아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이다. (전설 속에 있다고 전해지는 초과근무수당의 존재는 잠시 예외로 해두자) 법적으로 사람은 일터 외의 장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되어 있다.

다시 위의 명제가 100% 맞는 말인지 생각해 보자. 사람이 하루 중 일터에 머무르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은 과연 정상일까? 이것이 정상이 아니라면 과연 위 명제는 옳은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비단 현실이 어떻던 간에 결국 이 명제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현실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러한 명제의 정당화는 결국 경제적으로 어떠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게 되는가?

OECD의 ‘2017 세계 고용동향’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인들은 연 평균 2,069시간을 일해 OECD 평균보다 약 305시간을 더 일한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력 기준 취업자의 연간 평균 임금은 32,399 달러 수준으로 역시 OECD 평균의 75% 수준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 둘을 가중하여 계산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시간당 OECD 평균의 약 66% 수준의 임금을 받고 일한다는 결과값이 나온다. 매년 고질적으로 지적되어 왔지만 아직 수정되지 못한 ‘더 일하고 덜 받는’ 모순적인 경제가 아직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소비와 생산이라는 두 개의 축이 맞물려 돌아가며 수요와 공급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소비할 시간도 없이 생산에만 몰두하고 있다. 물론 내수규모가 애매모호하고 해외수요가 큰 한국의 특성상 내수규모에 알맞은 균형노동시간 대비 초과노동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이 문제다. 소비할 시간은 적고 노동시간 대비 손에 쥐어지는 가처분소득도 많지 않으니 소비자들은 어느새 ‘가성비’ 만 찾기 시작한다.

여기서 파생되는 또 다른 문제는 소비행태 자체가 가성비를 좇게끔 왜곡되다 보니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원가 논쟁이 불필요하게 발생하고, 이는 우리나라의 내수시장이 균형 있게 성장하는 데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노동에 대해 근본적인 철학이 부족한 상태로 고도성장을 이룩한 결과, 우리는 외형적 성장이 분명히 정체되는 국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현재 직면한 경제적 문제를 현명하게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우리가 과거 고도성장기 우리를 지배해 왔던 철학적 명제를 너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IT와 효율성의 시대이지만, 인문학적 성찰이 우리 경제에 더욱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문: 김현성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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