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tzsong 5 January 2018

어떻게 하면 책을 안 살 수 있을까?

칼바람이 콧날을 스치고 쩌릿쩌릿 발도 시린 게 책 읽기 딱 좋은 날씨다. 하기사 나에게 책 읽기 좋은 날씨란 게 따로 있을 리 없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이 책 읽기에 감사할 뿐. 요새는 어떻게 하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이유인즉 사두고 읽지 않은 책이 ‘난 언제 펼칠 거냐’며 줄지어 서 있기도 하고, 놓을 공간도 (회사건 집이건) 부족하다.

책을 최대한 덜 사거나 그마저도 어려울 땐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을 구입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난감할 뿐이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어떻게 하면 책을 사지 않을 수 있느냐고. 어쩌면 독서 자체를 금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쨌거나 당분간) 책을 사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책 쇼핑을 줄인다고 줄이고 있지만 간간이 한 권씩은 어쩔 수 없이 주문하게 된다.

출처: 이은북

최근에 내가 주문한 책은 일본 작가 아사이 료의 『청춘 에세이』 『시간을 달리는 여유』다. 몰랐다면 모를까, 아사이 료의 책이, 그것도 그의 첫 에세이가 나왔다는데 안 살 수가 없어 트위터에서 우연히 누군가의 평을 보자마자 주문해버렸다. 당장 주문하지 않는다뿐이지 사고 싶은 게 생각날 때마다 메모지에 적어 놓고 있는 책 제목만 해도 30권이 훌쩍 넘는다(전에는 사고 싶은 책이 생길 때마다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 놔서 현재 장바구니에 담긴 책만 400권이다).

책을 사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에 발길을 끊어야 하고, 팟캐스트 ‘빨간책방’ ‘낭만서점’ ‘책, 이게 뭐라고’ ‘오디오 인생서점’ ‘문장의 소리’도 듣지 말아야 한다. 특히 ‘소설리스트 세상의 모든 소설’에 접속하지 말아야 하고 월간지 《책(Chaeg)》도 보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아예 독서 자체를 금지해야만 한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 당연히 사고 싶은 책이 또 생기기 때문이다. 책 속의 책만큼 치명적인 도서 추천도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걸 하지 않는다는 건 내 삶의 유일무이한 재미를 제거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돌고 도는 악(?)순환이 된다. 책을 읽고 사는 게 누군가에게는 선순환이겠지만 나에게는 악순환이나 다름없다니.

illust by 이영채

언젠가 나의 동거인이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왕창 주문하는 것도 모자라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또 책을 사는 걸 보고 어떻게 읽고 싶은 책이 계속 생겨날 수 있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나는 반대로 어떻게 읽고 싶은 책이 하나도 없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남에게 뺏기고 싶지 않을 만큼 나에겐 너무 재미있는 이 독서라는 취미가 왜 다른 사람한텐 적용되지 않는 걸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질문. 그렇다면 너는 왜 축구를 싫어하고 너는 왜 요리에 관심이 없으며 너는 왜 여행을 그토록 싫어하느냐는 질문과 다를 게 없지.

오래전부터 독서를 탐닉하고 책이라는 물성이 가진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서점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이 꿈은 아직도 유효하며 적어도 10년 안팎에는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써놓고 보니 소박한 꿈이 아니라 거대한 꿈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책 팔아서 밥 먹고 살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굉장한 무리수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무릇 모든 것에는 콘셉트가 중요한 시대. 내가 차리고 싶은 책 방의 콘셉트는 ‘내가 읽은 책만 파는 서점’이다. 사실 그냥 책방보다는 ‘책 대여점’이 꿈이다. 새 책을 팔기보다 내가 읽은 책을 누군가에게 빌려주고, 되돌려 받을 때 몇 마디 나누는 정도가 딱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책방의 모습이다. 누군가 내가 읽은 책의 재미 여부를 물어도 그저 ‘재밌어요’ 혹은 ‘좀 지루하던데요’ 정도의 이야기밖에 해주지 못하는 빈곤한 말주변이지만 그래도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해질 수밖에 없는 정감을 느껴보고 싶다.

사실은 건너편 책방에서 일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했던 미술학원 강사 시절 내가 일하던 학원이 (아파트 상가) 지하 1층이었는데 우리 학원 맞은편에 책 대여점이 있었다. 책을 좋아했던 나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분주한 틈틈이 통유리창을 통해 본 건너편 책 대여점 주인의 유유자적한 모습이 너무 부럽기만 했다.

그녀는 작고 소박한 카운터 겸 책상에 앉아 늘 책을 읽고 있었다. 어느 날은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을, 어느 날은 박희정 작가의 만화책을, 또 어느 날은 이름 모를 외국 작가의 에세이를. 가끔 퇴근하는 길 그 책 대여점에 들러 책을 빌려 가곤 했는데 마음 같아선 직원 안 뽑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미술학원 관두고 책 대여점에서 일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알바를 둘 정도로 책방이 잘될 리 없었으니 묵묵히 빌린 책을 반납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책을 안 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요즘이다. 하루도 못 갈 거란 걸 알지만 전처럼 미친 듯이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왕창 결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쪼록 한 권 사서 다 읽은 다음 책을 구입하는 독서습관을 유지해야겠다. 사놓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거나 읽다가 만 책을 찾아 읽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나 안 읽고 못 배기는 타입의 책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란다. 눈에 띈 이상 사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나니까.

원문: 이유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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